도쿄 초후시에 있는 '키미토피아 キミトピア'에 관한 이야기... 는 아니구나. 도쿄 키타구의 '키타토피아 北とぴあ'같은 장소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 제목의 유래는 책 도입부에 쓰여 있다. 그건 그렇고 독특한 단편집이다. 읽기 시작하면 연이어 날아오는 변화구에 정신이 멍해지고, 와~ 다음엔 어떤 공이 날아올까? 하며 단편을 하나 다 읽을 때마다 기대감이 차오르며, 조금 무서워지기도 하고, 책을 다 읽기가 아까워진다.

 

 단편의 화자는 '나私'일 때도 '나僕'일 때도 '나俺'일 때도 있지만, 모두 일인칭이다. '적는' 말이라기보다는 트위터적인 '치는' 말의 독백으로 엮여 있으며, 스스로의 말에 대한 반박도 가득하지만, 대화 부분도 잘 짜맞춰져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즉 변화구같은) 재미가 있다.

 

 등장인물 중에는 괴팍한 사람이 많다. 각 단편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의 도리를 지키려고 하는 결벽성일까. 그들은 떳떳하지만 요령이 없는 이들이다. 특히 여성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견해를 철저하게 언어화해 상대에게 제시하려 하는 불굴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첫 단편 '상냥해날린 やさしナリン'의 주인공은, 타인에 대한 동정이 과하여 스스로의 생활 기반을 망각할 듯한 친족에게 가차없는 비판의 말을 거듭 날린다. 상냥함 그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인 동정에 휩쓸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로 결론짓는 일도 있을 수 없다.

 

 그 점은 저속한 별명을 지닌 선배와 거리를 두고 싶은 여대생이 등장하는 '응뽀 선배 ンポ先輩'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로부터 선배와 주변 학생들을 신경 쓰게 만드는 현재의 태도를 개선하라는 충고를 받은 주인공은, "미안, 난 분위기空気의 노예가 아니거든"이라고 답한다. 뼈있는 한마디다. 분위기 파악을 하고, 오로지 남에게 맞추려고 하는 일본적인 문화가 여기서는 단호하게 부정된다. 그의 고집은 사소한 듯하지만 본질에 닿아있고, 가히 실존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엉뚱한 연상 같을지도 모르지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도시의 정글'이 떠올랐다.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이민 남성에게 "자네의 의견을 내게 팔아주게"라고 하는 남자가 찾아온다. 돈과 폭력을 동원하여 생각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상대에게, 이민 남성은 어디까지나 'NO'를 관철하려 한다...... 브레히트의 희곡은 다분히 정치적이나, 마이조 오타로의 작품 또한 강자를 따르라는 일본적인 풍토長いものには巻かれろ的な風土 앞에서 개인으로 존재할 자유를 모색하고 있으며, 개그같은 무대 설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스토커 사건이나 유괴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개인의 영역에 불합리한 폭력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나타내는 것일까.

 

 '한밤의 떠도는 벌 真夜中のブラブラ蜂'에서는, 아이를 다 키워낸 전업주부의 모르는 곳을 떠돌고 싶다는 욕구를 이야기한다. 동네 산책으로 시작하여 자전거 원정, 자동차 드라이브, 더 나아가서는 국내 여행...... 이라는 식으로 행동 범위가 점점 넓어져 간다. 이 즉흥적인 떠돎은 너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한편 이 주부는 녹초가 되어 저녁 밥을 짓지 못 할 만큼 진심으로(!) 떠돌고 있으며, 배려심이 있어 보이는 가족조차 저버리고 끝까지 떠돎을 추구한다. 타인에게 이해받기는 힘들 듯한 행동이지만, 그에게 있어 이제 떠돎은 삶의 핵심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이 '떠돎'에는 사실 다양한 명사를 대입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고집스러운 사람들 뿐이어도 사회가 기능하지 못할 것 같다고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생각하지만, 자유와 이상을 위해 결연히 얽매임을 끊어내는 히로인들은 후련한 느낌을 준다. 한편 남성 주인공들은 좀 더 부드럽고 수동적인데, 가령 '슷토코돗코이쇼. すっとこどっこいしょ。'의 화자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진로 희망을 쓰라는 말을 듣고 일주일을 고민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고1이면 그럴 만도 하다 싶지만, 그 후 도쿄대에 진학하고서도 그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안이한 결정보다 '고민할 권리'가 철저히 존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겨진 외톨이 あまりぼっち'의 화자처럼 회사를 관둔 사회인 남성 또한 유예기간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조바심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나'의 곁에 찾아온 어제의 [나]. '나'와 [나]의 의견이 갈리게 된다는 발상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일종의 안티 교양소설일까? 고도성장기 '발전'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달까. 읽으면서 내 안의 선입견을 깨닫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스릴 만점의 독서 모험이었다.

 (마츠나가 미호 / 독일문학자)

 

個であり続ける自由――舞城王太郎『キミトピア』 松永美穂

(波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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