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조 오타로』by 아다치 히로타카(오츠이치) [1/3] ← Prev

 

 

 마이조 오타로의 단편 영화 <BREAK>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헤메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그를 연기하는 것은 사토 타카시佐藤貴史. NHK의 어린이 프로그램 <찾았다! みいつけた!>에서 사보상サボさん(*역주:선인장씨)이라는 캐릭터를 맡고 있는 배우다. 나는 마이조 오타로인 척 하며 사토 타카시와 그 외 배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리허설을 했다. 모든 배우들이 나를 가짜라고 생각하긴 커녕, 이 사람이 바로 아쿠타가와상 후보까지 올랐던 마이조 오타로 작가님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또한 영화를 완성할 때까지 조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진짜 마이조 오타로는 리허설 상황도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었고, 시노자키의 휴대폰으로 일일이 메일을 보내왔다. 인터컴을 찬 시노자키가 리허설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메일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면 그의 말은 무선을 통해 내 이어폰으로 전달된다. 나는 마이조 오타로의 뜻에 따라 연출 지도를 한다. 이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형태의 상징을 원한 것이리라. 애초에 감독이란 영화 현장에 있어 상징 그 자체다.

 

   "영광이네요, 설마 제가 마이조 작가님을 만나게 될 줄이야. 어떤 분일지 궁금했거든요."

 

 흡연소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는데 배우 한 명이 와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조감독으로서 참여한 나였지만, 어느새 《감독 마이조 오타로》를 연기하고 있다. 담배 연기를 뱉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날 죽이고 싶어졌죠? 어디에나 있는 흔해 빠진 얼굴이라서, 당신을 실망시켰을 겁니다."

   "아뇨, 이미지 그대로예요. 거짓말같지만, 상상했던 마이조 작가님 모습 그대로라 놀랐어요." 배우는 가방에서 마이조 오타로의 하드커버 책과 매직펜을 꺼냈다. "혹시 괜찮으시면, 여기 싸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좋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싸인본을 만들었다. 시노자키의 명령으로 특훈을 한 덕에, 나는 마이조 오타로의 필체를 흉내 낸 싸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너무 재밌었어요."

   "거 고맙군요."

   "죠죠 소설을 쓴 사람은 더 있지만, 마이조 작가님 책이 제일 최고였어요."

   "그러시겠죠."

 

 배우는 싸인본을 들고 기뻐하며 돌아갔다. <BREAK> 촬영이 끝난 후, 내가 마이조 오타로의 대역이었다는 사실이 정식으로 공지될 예정이다. 그때 진짜 싸인본이 배송되도록 시노자키에게 말을 해 둬야겠다.

 

 배우들만 속인 것이 아니었다. 조명부, 녹음부, 미술부, 의상부 스탭들과 처음 인사를 나눌 때도 나는 마이조 오타로를 자칭했다. 그들 앞에서 감독인 척 자신만만하게 행동해 달라고 시노자키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적을 수록 좋다. 내가 진짜 마이조 오타로가 아닌 이름 없는 일반인에 지나지 않음을 아는 이는 나와 시노자키, 촬영감독과 그 외 잡무를 담당하는 리얼커피 관계자 몇 명뿐이다. 시노자키는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와 면식이 없는 스탭만을 골라 모았다. 나의 낮은 사교성이 도움이 되었다. 평소 술자리에 가지 않고, 친구도 적고, 동료와 교류가 없다시피 했기에, 같은 업계에서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마이조 오타로를 사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마이조 오타로를 연기해야 하므로 조감독을 따로 구할 필요가 있었다. 촬영 당일 스케줄 및 차량, 식사, 화장실 위치 등 여러 요소를 검토할 조감독을.

 

   "마이조 감독님."

 

 언제부턴가, 그렇게 불리우면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와 마이조 오타로라는 이름이 일치하게 된 것이다. 이 쯤 되니 시노자키를 통해 전달 받는 마이조 오타로의 지시도 줄어들었다. 그 의미는 명백하다. 나는 마이조 오타로가 추구하는 비전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나는 그가 집필한 각본에서 그의 사상을, 스토리보드에서 그가 상상하는 화면, 최종 편집 방식을 읽어낼 수 있었고, 마이조 오타로라는 작가의 내면조차 이해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가 감독으로 이 자리에 와 있다면 분명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이런 지시를 내릴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리를 꼬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스탭을 안심시키려고 어깨를 두드리곤 할 것이다... 그런 예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시노자키를 통해 지시가 내려올 때도, 그의 말이 들리기보다 몇 초 빠르게 지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이조 오타로 행세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나 자신의 이름조차 깜빡하는 경우가 생겼다. 일상 생활 속에서 주소와 이름을 적을 필요가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마이조 오타로라고 적고는 했다. <BREAK>의 주인공처럼 현실과 비현실이 뒤범벅되고 있다. 만약 마이조 오타로가 복면 작가 따위가 아니라 얼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면 그걸 보고 마이조 오타로의 얼굴과 내 얼굴을 비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이조 오타로가 아닌 나 자신이라고 납득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러지도 못 한 채로, 나의 내면은 마이조 오타로라는 이름에 먹혀들어갔다.

 

 이대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BREAK>의 스탭과 배우들이 나를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 선생님으로 대우해주는 것은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게는 평범하고 이름 없는 일반 시민에 불과한 나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스스로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도록, 나를 증명할 무언가를 찾아 모았다. 운전면허증과 보험증, 친구에게 받은 편지. 오래 연락을 안 했던 부모님과도 통화를 하며 내가 마이조 오타로 따위가 아닌 나 자신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마음 한구석은 마이조 오타로에게 침식된 그대로였다. 안심을 얻으려면 눈에 보이는 알기 쉬운 형태의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는 내가 아니고, 나는 그가 아니라는, 명확한 선을 긋기 위한 상징이. 예를 들자면, 그래, 마이조 오타로의 정체를 또렷하게 촬영한 사진이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이른 아침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 집합해 촬영 버스를 타고 촬영지인 초후시로 향했다. 촬영 기간은 사흘 동안이다. 인원이 다 모이자 프로듀서 시노자키의 인사말이 있었고, 이어서 마이조 오타로인 내가 스탭들을 독려했다. 우선 주택지를 무대로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감독과 스토리보드를 사이에 두고 상담을 했다.

 

   "이 장면에 삼각대는 필요 없어. 마이조 오타로라면 아마 안 쓸 테니까. 야, 근데, 이 현장을 마이조가 어디서 보고 있을까?"

 

 촬영 스탭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몇몇 배우는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이조 오타로는 이 촬영 현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마이조 오타로의 지시가 있을 경우 시노자키가 준 무선 이어폰에 연락이 오게 되어 있다. 스탭 중 한 명으로 변장해서 숨어들지 않았을까. 예상 밖의 인물이 마이조 오타로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촬영감독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마이조 오타로는 당신이잖아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갔다. 말투도 진짜 작가 선생님을 대하는 것처럼 정중하지 않은가. 이어폰에서 시노자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촬영하라는 지시였다. 어찌 됐건 나와 촬영감독은 마이조 오타로의 스토리보드를 따라 영상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촬영하려는 샷의 내용을 배우에게 설명하고, 어떻게 걷고 어떻게 대사를 말하고 시선은 어디를 봐야 할지를 결정했다. 나는 배우와 대화하며 그들의 내면을 탐구했고, 촬영감독은 화면에 올라가는 모든 요소를 책임져 주었다. 촬영은 렌즈를 교환할 수 있는 DSLR로 한다. 기념할 만한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의 녹화 버튼이 눌러지고,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조감독이 슬레이트를 탁 쳤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그 시간의 단편이 촬영소자에 의해 기록된다. 내가 컷이라고 말하자 녹화는 종료되었고, 배우는 연기를 멈췄으며, 스탭들 모두가 내 말을 기다렸다.

 

 지금 그건 OK일까, 아니면 NG일까. 그 결정은 마이조 오타로의 몫이다. 내가 아닌, 어디선가 이 현장을 보고 있을 진짜 마이조 오타로가 결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말 없이 스탭들을 노려보며 이어폰의 지시를 기다렸다. 몇 초간 곰곰이 생각하는 척했다. 마이조 오타로가 지을 것이 틀림없는 표정을 얼굴에 걸친 채. 이윽고 시노자키의 목소리가 이어폰에 들려왔다.

   "마이조씨의 메일이 왔어요! OK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탭들을 향해 새삼스레 "OK!"라고 외쳤다. 스탭 모두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번거로운 절차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없기에 바로 다음 컷 준비에 들어갔다. 나는 스토리보드를 체크하며 주변에 시선을 돌려 마이조 오타로 본인을 찾았다.

 

 리테이크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그는 배우의 연기를 어디선가 관찰하고, 메일로 시노자키에게 지시를 보냈다. 하지만 어느 스탭도 촬영 중에는 휴대폰을 만지지 않았다. 아마 마이조 오타로는 어딘가 떨어진 장소에 있을 것이다. 촬영 장비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니, 몇 군데에 무선 중계 장비가 있었고, 그것들을 리얼커피 관계자가 관리하고 있었다. 촬영에 쓰는 DSLR에 연결된 케이블이 그 장비들에 이어져 있다. 보아하니 마이조 오타로는 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다른 곳에서 체크하고 있는 듯하다. 무선이 닿는 범위 내에서 모니터와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 안에 숨겨 놓은 디지털 기기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었다. 바로 소형 카메라다.

 

 촬영 중 틈을 타서 마이조 오타로가 있는 곳을 알아내 정체를 몰래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 행동을, 혹시 리얼커피 관계자가 눈치챈다면, 나는 그 즉시 해고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영화를 다 찍을 때까지 잘리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페이가 깎일 우려가 있다. 애당초 마이조 오타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내 목적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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