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조 오타로』by 아다치 히로타카(오츠이치) [2/3] ← Prev

 

 

 휴식 시간에 무선 중계 장비에 관해 휴대폰으로 검색해봤다. 반경 600미터 범위에 있는 수상기에 동영상을 송출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그 범위 안에 마이조 오타로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를 찾아 어슬렁거릴 틈이 없었다. 스탭들 모두가 쉴 틈 없이 찾아와서 질문 공세를 하기 때문이다.

 

   "첫 촬영 현장치고는 당당하시네요, 마이조 감독님."

 

   스탭 한 명이 내게 말했다. 평소에는 조감독으로 활동하기에 촬영 현장에는 익숙하다. 그 덕을 본 듯하다. 감독이란 스탭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심볼 내지는 아이콘이다. 당당히 의자에 걸터앉아 정신적 지주를 연기하면 된다. 현장 정리는 조감독과 촬영감독이 다 해준다.

 

 감독이 할 일이란 무엇일까? 여러가지 답이 존재하겠지만, 우선은 스탭을 믿는 일이다. 몸을 맡기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게 쉽지 않다. 끝까지 존중하고 믿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을 하나씩 판단하는 일. 스탭들과 배우들은 내게 묻는다. 지금 한 일이 어땠냐고. 나는 받아들이거나, 혹은 부정한다. 나의 판정에 의해 그들은 스스로의 형태를 조각해 간다. 영화 촬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감독에게 YES와 NO라는 판단을 받으면서, 그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발견해 간다. 그들은 그 일을 완수하려 할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

 

 하나, 또 하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며 나는 마이조 오타로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나는 말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에 의해 사람들은 가야 할 방향을 발견한다. 어찌 해야 할지 헤메고 있는 배우와 스탭들은, 길 잃은 어린 양이다. 나는 마이조 오타로라는 존재에게서 말을 건네받고, 어린 양들을 인도하였다. 감독이라는 상징을 짊어지게 된 나는 마이조 오타로라는 익명의 이야기를 연기한다. 

 

 둘째 날은 석양이 깔리는 강가에 병원 침대를 놓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장면을 촬영했다. 그 와중에, 저 멀리 미니밴이 세워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 관짝처럼 차체가 새까맣다. 스탭이 몰고 온 차일까. 미니밴은 촬영 종료와 동시에 움직였고, 곧 사라졌다. 나중에 시노자키에게 물어보니, "그런 차가 있었나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어쩐지 서먹서먹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날, 어느 IT기업의 사무실 한 층을 빌려 촬영을 했다. 현장 상황을 마이조 오타로가 실시간 감시할 수 있도록, 사전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몰래 설치되었다. 촬영은 순조로웠다. 나는 컷이라고 할 때마다 마이조 오타로의 판정을 기다렸다. 대부분의 경우, 나와 마이조 오타로의 의견은 일치했다. 리테이크 후 수정해야 할 포인트도, 그의 지시를 기다릴 것도 없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마이조 오타로가 품고 있는 비전을 완전히 공유하고 있었고, 나 자신과 그와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져갔다. 이어폰을 끼지 않았더라도, 나는 문제 없이 마이조 오타로를 연기하며 <BREAK>를 촬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었고, 나는 드디어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을 놓치면 이제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마이조 오타로가 있는 곳을 밝혀내기 위해, 빌딩의 모든 층을 체크한 후, 근처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그 무선 중계 장비라면 600미터 안에서 현장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나야 한다. 헤어진 여자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또는 그의 정체를 촬영해 나의 인격과 그의 존재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아니, 더 순수한 동기가 내 안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만나고 싶었다. 마이조 오타로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그리고, 내 연기는 어땠는지 판정받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나는 바르게 행동했을까. 나는 바르게 당신이 되었던 걸까.

 

 이윽고 나는 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검정색 미니밴을 발견했다. 둘째 날 촬영 중에 목격한 차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미니밴에 다가갔다. 마이조 오타로의 차일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차 안에는 분명 촬영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장비가 실려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모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곳은 내게 있어 숭고한 장소였다.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신의 자리와 마찬가지로.

 

 지하 주차장은 어두웠고, 형광등 몇 개가 나가기 직전이었다. 깜빡이는 길다란 형광등의 빛을 피하며, 주차된 다른 차들의 그림자에 숨으면서 미니밴에 다가갔다. 그만 바닥을 구르던 빈 캔을 발로 찼고, 그 소리가 지하의 콘크리트 벽에 반사되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누군가가 소리를 듣고 미니밴에서 얼굴을 내밀려는 낌새는 없었다. 이어폰에서 시노자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독님, 어디 계세요? 쉬는 시간 끝났습니다. 돌아오세요." 나는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에 집어넣고, 대신 소형 카메라를 꺼냈다.

 

 미니밴의 측면에 몸을 기댔다. 엔진은 꺼져 있다. 차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들여다봤다. 새까만 스모크 필름이 부착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차 안을 볼 수 없다. 다만, 새까만 필름 너머로 여러 개의 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차 안에 감도는 빛의 모양으로 추측하건대, 모니터 화면일 것이다.

 

 나는 결심을 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이조 오타로, 거기 있지?"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차 안에서 그가 몸을 움직인 기색도 없다. 차 문은 미닫이식이었다.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고 문을 열어보았다.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다. 

 

 차 안에는 예상대로 모니터들이 놓여있었다. 뒷좌석을 떼어내어 공간이 넓다. 바닥에 깔린 케이블이 모니터와 무선 통신 장비를 연결하고 있었다. 모니터에 비춰지고 있는 곳은 <BREAK>를 촬영하는 사무실이다. 스위처로 여러 각도의 카메라 영상을 바꿔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촬영 스탭과 배우들의 모습이 화면 속에 있었다. 널브러져 있는 헤드폰을 집어 귀에 대니, 그들의 말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마이조 오타로 본인의 모습은 차 안에 없다.

 

   "마이조 오타로, 어디 숨었어!"

 

 그가 이곳에서 현장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차 안을 헤집으며 그의 정체를 나타내는 단서를 찾았다.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좋다. 장을 본 영수증이라도 좋다. 구두 발자국이라도 상관없다. 이곳에 마이조 오타로의 모습이 없는 것은, 내가 올 것을 예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니터에 비춰지는 나의 수상한 거동을 보고, 잠시 이 자리를 벗어난 것이리라. 그런데 왜 차를 끌고 도망가지 않았지? 문도 잠그지 않고 일부러 열리게 해두었고.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이조 오타로의 흔적을 찾던 중, 조수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마이조 오타로가 쓴 책 중 한 권이다. 책을 들어 표지를 넘기니 마이조 오타로의 싸인이 있었다. 받는 사람으로서 내 이름도 쓰여 있고, 커피컵에 개가 들어가 있는 일러스트도 그려져 있다.

 

 한동안 기다려봤지만, 마이조 오타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하 주차장을 나와 촬영 중인 사무실로 돌아갔다. 다들 내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딜 가셨던 겁니까, 감독님!" 날 욕하는 시노자키의 뺨에 주먹을 한방 갈겼다. 바깥이 어두워졌고, 촬영은 예정된 시간이 지날 무렵에 종료됐다.

 

 

 

 <BREAK> 촬영을 마친 후, 나는 마이조 오타로 행세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원래 생활로 돌아오자, 역시 나는 마이조 오타로 따위가 아닌 어디에나 있는 이름 없는 평범한 사내임을 깨닫고 말았다. 나 자신과 마이조 오타로의 경계가 어쩌니 하며 고민했던 것도 바보같이 느껴질 만큼 나는 나였다. 헤어진 그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이조 오타로가 찍은 영화 조감독을 했다며? 그 사람 만났어? 어떤 사람이었어?" 공통된 지인으로부터 <BREAK>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들었나 보다. 마이조 오타로를 만나지는 못 했다고 설명하자, 여자는 나를 놀리듯이 웃었다.

 

 촬영 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시부야에 있는 유로스페이스라는 영화관에서 마이조 오타로 감독 작품 <BREAK>의 완성 피로 시사회가 개최됐다. 촬영으로 만들어진 영상 소재는 마이조 오타로의 손에 의해 무사히 편집된 모양이다. 추가 촬영이 없어서 안심이 되었다. 시사회가 개최될 무렵에는 이미 내가 마이조 오타로가 아닌 가짜라는 사실이 모든 관계자에게 공지된 상태였다. 진실을 알고 화내는 사람, 재미있어하는 사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유로스페이스 로비에 나타난 날 발견하고, 스탭들이 익살스럽게 "마이조 감독님 오랜만입니다."라고 말을 걸어왔다.  

 

 시사회 시작 시간까지, 나는 로비를 돌아다니며 마이조 오타로 본인을 찾았다. 시사회에 왔을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듯한 인물은 역시 보이지 않았고, 대신 촬영감독과 마주쳤다.

 

   "놀라면 미안하니까 미리 말해두고 싶은데 말이야. 이번에 마이조 유지로舞城悠二郎라는 이름으로 크레딧에 올라갔어."

   "뭐야 그게, 무슨 암호야?"

   "글쎄. 모르지만 이게 그의 방식이야."

 

 극장 입구에 시노자키가 등장하여 시사회의 시작을 알렸다. 나와 촬영감독은 상영관에 들어가 각자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남이 가까이 있으면 집중을 못 하는 성격이라 양옆이 비어있는 자리를 골랐다. 시사회를 보러 모인 스탭과 배우들의 얼굴이 상영관을 채웠고, 나는 좌석에 깊이 앉아 정면의 새하얀 스크린을 바라본다. 시노자키가 앞으로 나와 짧은 인사말을 마치자 조명이 어두워졌다. 스크린이 영사기의 빛을 받아 어둠 위에 상을 띄운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BREAK> 상영 중, 내 옆에 누가 앉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영화에 정신이 팔려 그쪽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컷이 바뀔 때마다 촬영할 때 생각이 나서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컷을 사용하다니 의외라고 생각될 때도 있었고, 반대로 여길 잘라내다니 놀랍다고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다. 이윽고 이야기가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흐르기 시작할 무렵, 옆에 앉은 누군가가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엔드 크레딧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아니 촬영감독 이름이 진짜로 마이조 유지로라고 되어있네 이게 대체 무슨 장난이람... 이라고 혼란스러워 하며 무의식적으로 옆 사람과 악수했다.

 

 영화가 완전히 끝나고 박수가 울려 퍼졌다. 조명이 켜지고 극장 안이 밝아졌다. 방금 전까지 옆에 앉아 있던 인물은, 이미 없었다. 엔드 크레딧 도중에 일어나 나간 모양이다. 뒤늦게 궁금해졌다. 대체 누구였을까. 악수를 했던 오른손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힘이 셌고, 불처럼 뜨거운 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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