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다치 히로타카(소설가로서는 오쓰이치 등의 필명으로 활동) / 사쿠라이 아미 / 마이조 오타로 - 이 세 명의 소설가가

각각 한 편씩 감독한 단편 영화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ぼくたちは上手にゆっくりできない。』가 일본에서 개봉하였습니다.

 

관람 특전으로 세 명의 소설가가 서로의 이름을 제목 삼아 집필한 신작 단편 소설이 배포되었고,

(아다치 히로타카와 사쿠라이 아미는 <마이조 오타로>라는 소설을 집필했고, 마이조 오타로는

<아다치군과 사쿠라이상>이라는 소설을 집필) 이 소설은 그 중 아다치 히로타카의 작품입니다. 

*이 소설과 다른 두 작가의 소설은, 2016년에 발매된 DVD 초회판 특전으로도 수록되었습니다.

 

 

 

 마이조 오타로라는 작가의 책을 한두 권쯤 읽어본 적이 있다. 사귀던 여자가 그의 열성적인 팬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내게 그의 책을 여러 권 빌려줬는데 도통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는 설명을 들어도 출판업계를 잘 모르는 내겐 그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감이 안 왔다. 아무튼 여친의 추천도서였기에 그의 소설을 대강 훑어봤지만 배배꼬인 내용이라 이해가 불가능했다. 평행세계가 어쩌고, 밀실이 어쩌고,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얼마 후 책을 빌려준 여자는 내게 장래성이 없다거나 취미가 맞지 않는다는 둥의 이유를 대며 떠나갔지만 사실 다른 원인이 있었다. 그 여자는 내 친구와 몰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진 후, 내 방에 팽개쳐져 있던 마이조 오타로의 책은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침을 뱉었고, 그게 끝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마이조 오타로의 이름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후였다. 낯이 익은 스탭이 날 불러 세워서 이런 말을 했다.

   "너, 전에 마이조 오타로라는 작가 책 읽었었지? 이번에 그 양반이 단편영화를 찍는다더라? 조감독을 찾는다던데. 너, 해보지 않을래?"

 

 소설가가 영화를 찍는다? 영화 감독을 한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설이나 써대면 될 것을. 하지만 뭐 일단 얘기는 들어보기로 했다. 그 단편영화의 제목은 <BREAK>고, 커피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로 기획된 세 편 중 한 편이라는 모양이다. 현재 각본이 막 완성된 단계이고, 올해 여름 쯤에 크랭크인 예정이라나. 다만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스탭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특수한 사정이라뇨?"

   "그 양반은 복면 작가거든"

   "복면 작가?"

 

 멕시코 프로레슬러처럼 마스크라도 썼나 했지만 아니었다. 각종 미디어에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자세한 프로필도 알 수 없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얼굴 사진이 나오지 않는 정체불명의 작가를 그리 부른다나 보다. 그래서 마이조 오타로는 유명한 문학상을 받을 때도 수상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사실은 여자라거나, 어떤 편집자의 펜네임이라거나, 과거 범죄 이력 때문에 신원을 밝힐 수 없다는 둥의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헤어진 그 여자는 항상 '마이조 오타로는 어떤 사람일까~?'라면서 궁금해 했었다.

 

   "근데, 그게 뭐 문제예요?"

   "촬영 현장에 얼굴을 내밀 수가 없거든. 신원을 숨겨야 하니까. 현장엔 여러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잖아. 누가 몰래 얼굴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까 봐 겁나는 거지. 그래서 얼굴을 내밀 수가 없다 이거야."

   "그럼 어떻게 감독을 하는데요?"

   "모르지."라고 하며 내게 제안을 가져온 스탭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너라면 조감독을 맡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엔 지랄한다 싶었지만, 결국 그 일을 맡아버렸다. 이유는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단편영화 <BREAK>의 촬영이 예정된 시기에 내 스케줄이 비어있었다는 것, 또 하나는 헤어진 그 여자에 대한 복수였다.

 

 마이조 오타로 감독 작품의 조감독을 맡게 되면, 언젠가 그와 대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현장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조감독인 나와는 어떤 식으로든 만나 말을 해줄 것이다. 그 때 개인적인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 분명하다. 나는 '마이조 오타로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그 여자의 의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안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약간이나마 우월감에 젖는 것이 나의 소소한 목적이며, 그 여자에게 내리는 벌인 것이다.

 

 

 

 마이조 오타로 감독의 단편영화를 기획 중인 곳은 리얼커피라는 수상쩍은 회사였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커피 원두라도 파는 회사인가 싶었지만, 영상물의 기획, 제작과 출판 등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조감독을 맡아도 좋다는 내 판단을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리얼커피 관계자로부터 나를 회사로 초대하는 메일이 왔다.

 

 리얼커피의 사무실은 진보초에 있는 빌딩에 차려져 있었다. 방문을 알리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몇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이조 오타로 감독 작품의 프로듀서는 시노자키篠崎라는 사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리얼커피라는 회사는 애당초 마이조 오타로의 아이디어로 설립된 모양이다. 회사가 세워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마이조 오타로 자신은 고단샤의 만화잡지에서 <리얼모닝커피>라는 연재도 했다. 매주 한 작품씩 아이디어를 내어서 영상 제작회사들에게 영상화를 제안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이조 오타로는 어떤 사람인가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봤지만, 시노자키는 말을 흐렸다.

   "사실은 저도 만난 적이 없어요."

   "아니, 이 회사 창업 멤버라면서요?"

   "그건 맞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연락을 메일로 하거든요.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조차 저희 회사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하지만 시노자키는 진지한 표정이다. 농담 투도 아니었다. 그는 메일로 받았다는 단편영화 <BREAK>의 각본과 스토리보드를 인쇄한 것을 내게 건넸다. 각본은 그렇다 치고, 스토리보드가 두툼한 종이 뭉치였다. 이대로 만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치밀했고, 박력과 스피드감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카메라는 누가 담당하죠?"

   "오늘 약속을 잡았습니다. 곧 오실 거예요."

 

 촬영감독 선정은 이미 끝나있었다. 곧 낯선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번 작품의 촬영감독이라는 소개 후,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이 사내도 마이조 오타로의 책을 몇 권 읽어봤고, 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정체에 관심이 있어 이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당신이 마이조 오타로인 건 아니겠지?"

   "뭐? 천만에!"

 촬영감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BREAK>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리얼커피 사무실 구석에서 스토리보드를 체크하고, 어떤 카메라와 렌즈가 이 작품에 어울릴지 검토했다. 감독의 의향을 묻고 싶을 때는 질문사항을 노트에 적어서 시노자키에게 건넸다. 그가 노트를 휴대폰으로 찰칵 찍어서 마이조 오타로에게 보낸다. 단 몇 초 만에 마이조 오타로의 답변이 그의 휴대폰에 도착한다. 그 메일에는 길고 긴 지시사항이 적혀있었다. 단 몇 초 만에 타이핑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나와 촬영감독은 주위를 둘러봤다. 천장에 하나, 사무실 구석에 있는 관엽식물에 하나, 시노자키의 넥타이핀에 하나, 소형 카메라가 감춰져 있었다. 음성을 듣기 위한 마이크도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마이조 오타로는 다른 장소에서 이 미팅을 실시간 시청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와 촬영감독의 대화를 도청하며, 사전에 질문사항을 파악해 답변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작작 좀 하시고! 얼굴 좀 보이시지!"

 내가 일어서서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촬영감독이 태평한 말투로 "흥분하지 마."라고 한다. "이게 그의 방식이야. 우리는 감독에게 맞춰주자고. 그렇게 만드는 영화가 있어도 되는 거 아닐까?"

 

 그 후 나와 시노자키와 촬영감독은 날을 잡아 로케이션 헌팅을 나갔다. 사진과 동영상을 잔뜩 찍었고, 그것들을 마이조 오타로에게 메일로 보냈다. 체크를 받고, 초후시의 강가 주변이 촬영지로 결정됐다. 하지만 배우 오디션이 문제였다. 

 

   "몇 번 오디션을 시도는 해봤어요. 그런데 배우들이 꺼려 해서..."

 시노자키는 말했다. 아무에게도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는 마이조 오타로는 오디션장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실내에 숨겨진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다른 장소에서 배우를 관찰하고, 질문이 있으면 시노자키에게 메일로 보내 배우에게 전달시켰다고 한다. 감독이 없는 기괴한 오디션 풍경에 배우들은 불안해 했고, 영화 출연을 주저하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이조 오타로는 촬영장에도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는 듯하며, 촬영 당일에도 이런 식으로 연기지도를 하고 싶다는 모양이다.

 

 배우는 신체성을 중요시하며, 찬미하기까지 한다. 연기란 육체를 사용하여 행해지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육체의 내부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표현한다. 그러니, 신체성을 제로에 가깝게 최소화하여 이름이라는 기호성만으로 신비함을 연출하는 마이조 오타로와는 본질적으로 상극이다. 배우들이 경계심을 품을 법도 했다.

 

   "그래서 부탁이 있습니다."

 시노자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마이조 오타로인 척 해주실 수 없을까요? 당신이 마이조 오타로가 되어 배우들 앞에 모습을 보이면, 다들 안심할 거예요."

 

 

Next → 소설『마이조 오타로』by 아다치 히로타카(오츠이치) [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