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GE JOESTAR』ONE : 쓰쿠모주쿠 [6/7] ← Prev
"그게 너란 걸 내가 아는 이유는, 유일하게 너에게만 내가 질투를 느끼기 때문이야. 내 존재 의의가 흐려진다는 게 이토록 불안한 일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런 식으로 머리를 써본 적이 없었거든.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나의 아무 근심 없는 위치를 얼마나 속 편하게 즐겨왔는지 깨달았어. 물론 내게도 여러모로 힘든 국면은 있었고, 괴롭고 슬픈 감정들도 맛보긴 했지. 그렇지만 말이야, 역할을 해낸다는 건, 당연히 항상 충족감이 따르는 일이야. 그리고, 충족감이 따르는 삶이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란 사실도, 나는 어째선지 알고 있어. 열 살인데도. 그리고, 열 살이기 때문에, 내 위치를 빼앗는 네가 조금 거슬렸던 거야. 어린애니까."
거의 트집에 가까운 말을 사정 없이 퍼붓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그 말은 내가 '셜록 홈즈'라던지, 너 같은 명탐정이 되어서 활약할 거라는 뜻이야?"라고 내가 말하자, 츠쿠모쥬크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하하.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괴물이나 신비한 힘 같은 게 등장하는 걸 보니, 네가 명탐정이 될 것 같은 느낌은 안 드는걸."이라고 하며 웃은 후, 말을 잇는다. "넌 아마, <죠지 죠스타>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죠지 죠스타라는 인물로서 살아갈 따름이겠지."
에이 뭐야. "그건 다들 그렇잖아. 나도 그럴 참이야."
그러자 츠쿠모쥬크는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전혀 그렇지가 않아. ……<비욘드>를 확신한다면, 너의 모험은 전혀 양상이 달라질 거라고. 믿기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상, 믿는 게 좋을 거야. 일단은 기억해 둬. 넌, 스스로의 <비욘드>를 믿고, 스스로의 운명을 넘어서야만 해."
츠쿠모쥬크가 무슨 좌우명 같은 대사를 읊었지만,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그렇긴 했지만, 그 후 나와 츠쿠모쥬크는 친구가 됐다. 거의 그 날 하루만에, 내가 꿈에서조차 바라왔던 단짝 친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 이야기는 비굴한 추억 뿐이었지만, 츠쿠모쥬크의 모험담은 즐거웠다. 츠쿠모쥬크는 일본인이고, 한자로 이름을 나타낼 수 있으며, 九十九十九 라고 쓴다는 것 같다. 이건 숫자 9, 10, 9, 10, 9를 늘어놓은 한자인데, 이런 이름을 지닌 사람은 일본에도 자기밖에 없다고 한다. 후쿠이 현 니시아카쓰키 초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고고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에 건너간 후,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카나리아 제도에 왔단다. 그 후, 여섯 살 무렵부터 명탐정으로서 카나리아 제도뿐 아니라 스페인 본국에 건너갔다 이집트에 날아갔다 하면서 사건의 추리와 해결을 맡아 왔다고 한다. 사건 내용은 쓰쿠모주쿠의 표현대로 파란만장했고, 하긴 그런 어려운 사건만 척척 해결해 왔다면, 나란 녀석, 신에게 선택받았나 본데~? 하게 되어도 이상할 게 없겠다.
그 후 학교도 안 가고 쓰쿠모주쿠와 놀기만 하는 동안 리사리사와 헤어지는 날이 찾아왔는데, 쓰쿠모주쿠와의 우정에 들떠있던 나는, 말을 나누는 빈도가 줄어든 리사리사와의 이별에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에, 담백하기 그지없는 이별이 될 것 같았다. 스트레이초 씨와 정체 모를 수수께끼의 동료들이 잔뜩 찾아와서는, 밥을 먹고 술잔을 부딪치는 와중에 엄마는 울었고, 리사리사는 어땠냐면 나랑 마찬가지로 이별에 별 감회가 없는 듯,
"저는 저의 운명을 따를 거예요."
라는 말을 모두에게 했을 뿐, 딱히 나한테 말을 걸지도 않는다.
나는…… 뭐 솔직히 환경이 바뀌어서 긴장되긴 했지만, 새 친구도 생겼고 안토니오 토레스가 없어진 후엔 날 괴롭히려는 놈도 이제 없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불안하진 않았고, 리사리사에 대해서도, 날 돌본다는 의무에서 해방됐으니 잘 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한 말은 전혀 달랐다.
단체 식사 모임이 끝나고, 다들 술을 들고 시거룸이나 테라스로 흩어진 후였다.
"죠지." 날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리사리사가 서 있었다.
"헤이."라고 대답은 했지만, 다음 말이 안 나온다. 해야 될 말이 잔뜩 있을 터인데, 그 어느 대사도 지금 이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리사리사가 말한다. "나 있잖아, 더 어렸을 땐, 왜 나는 죠스타 가문 아이가 아닐까, 그렇게 태어나면 좋았을 텐데, 라고 늘 생각했었어. 그러면 마마 에리나도 우리 엄마일 테고, 죠지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죠지 누나였을 거잖아?"
"……응."
"그치만 있지, 지금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왜? ……나같은 애 누나가 되면, 더 귀찮았을 거라서?"
그러자 리사리사가 웃는다. 오랜만에 리사리사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후훗. 바보같긴. 그게 아니야. ……저기, 죠지는 어떻게 생각했었어? 내가, 누나가 되어 줬으면 했어?"
"뭐……? 아니, 난 그런 상상은 전혀 안 해봤는데. 누나고 뭐고 없었어. 리사리사는 리사리사였으니까."
정말이다. 그런 가정을 아주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리사리사가 나의 정식 가족으로서 곁에 있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안 됐다. 그리고 리사리사가 내 가족이 아니어서 다행인지 아닌지는, 한 번도 생각 못 해본 질문이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리사리사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뭐가?"
"그야, 누나 동생이면, 우리 커서 결혼 못 하잖아?"
"뭐라고?"
"나, 아직 좋아한다던지, 연애 같은 거, 잘은 모르지만, ……죠지랑 결혼할 수 있는 입장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결혼!? 리사리사랑?
"그런 것도 전혀 상상이 안 돼." 그만 솔직하게 말해버린 나는, 앗, 지금 이 말은 상대가 리사리사여도 여자한테 할 말이 아니지 않았나, 생각한다.
"후훗. 실례잖아."라고 말하며, 리사리사가 웃고 있다.
"리사리사, 사랑해."
나는 순간적으로 말했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나도 그래 죠지. 나도 너 사랑해."
리사리사도 그렇게 말했지만, 얘가 무슨 말하는 거지? 싶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각자의 침실에 들어가 잠을 잔 후, 아침에 일어나 엄마와 함께 모두를 배웅하러 나갔고, 리사리사를 향해 손만 흔들었지 작별 인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엄마와 단둘이 귀가한 후, 나는 쓰쿠모주쿠네 집으로 놀러 갔다.
새해가 된 후, 나는 쓰쿠모주쿠와 함께 열두 살이 되었다. 쓰쿠모주쿠와 같이 있자니 다양한 사건을 맞닥뜨렸고, 나는 카나리아 제도에서만 세 개의 연속 살인사건에 휘말렸다.
"어라라~? 내가 아직 명탐정 역할을 해내고 있네……." 쓰쿠모주쿠는 엉뚱한 대사를 읊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정말 머리가 좋고 대단한 녀석이다. 나는 왓슨 노릇도 제대로 못해내는데.
그 후 열세 살이 되자, 밀실 살인사건만 15건이나 해결했고, 열네 살이 되자, 연속 살인마를 두 명 잡았고, 열다섯 살이 되자, 2년 전의 15밀실 살인사건이 모두 동일범의 짓이었음을 밝혀내고 진범을 잡았다…… 대부분, 쓰쿠모주쿠가.
그대로 그런 식으로 고등학생이 될 줄 알았건만, 15밀실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자 마자 쓰쿠모주쿠가 일본에 귀국하게 되었고, 나는 울었다. 앞으로 나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알 수 없었기에.
"하하하. 아마 이제부터가 <비욘드>가 제 몫을 할 차례일 거야." 쓰쿠모주쿠가 선착장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 명사,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농담하지 마."
"정말이야. 내가 처음에 했던 말, 기억해? 기억해 두라고 했지?"
넌, 스스로의 <비욘드>를 믿고, 스스로의 운명을 넘어서야만 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쓰쿠모주쿠라는 처음 생긴 친구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는데 전념하고 싶어서,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 자신이다, 같은 케케묵은 대사를, 지금 여기서 다시 읊어줄 필요는 없다. 그런 것보다 난 단지, 그저 이 잘생긴 명탐정과, 온갖 모험을 함께 한 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 일본에 갈게.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꼭 널 만나러 갈 거야. 그땐, 또 우리 둘이서 사건을 해결해버리자!" 뭐 항상 쓰쿠모주쿠가 해결하긴 하지만 내 맘 알지?
울먹이며 말하는 내게, 쓰쿠모주쿠가 "아~ 어쩐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을 날렸고, 내 가슴엔…… 비수가 꽂혔다! 하여간 이 녀석은, 이렇게 무신경한 구석이 있다니까!
"아니야, 난 널 만나러 갈 거야!" 내가 억지 부리듯이 말하자, 쓰쿠모주쿠도 "뭐, 그게 <비욘드>의 뜻이라면."이라고 했고, 내게 일본어 사전을 준 후, 배를 타고, 대서양을 향해 떠났다.
쓰쿠모주쿠가 탄 배가 플로리다 먼바다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그로부터 3일 뒤였고, 그 뉴스가 카나리아 제도에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다시 5일이 지난 뒤였다. 나는 족히 두 달은 절실하게 기도했었기에, 그 미국행 배가 바닷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군함이 우연히 발견하자, 나는 배신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신을 저주하며, 울었다. 무슨 뜻이 있는지 알 바 아니지만, 나한테서 친구를 빼앗은 대가는 비싸다고! 내가 처음 사귄, 하나뿐인 친구였단 말이야! 굉장한 녀석이었는데! 이야기 주인공에 정말 어울리는 건 그 녀석이었는데!
*제2장에 계속됩니다.
<죠지 죠스타 JORGE JOESTAR> 목차
ONE 쓰쿠모주쿠(九十九十九)
제2장 니시아카쓰키초(西暁町)
THREE 상처
제4장 모리오초(杜王町)
FIVE 상자
제6장 섬
SEVEN 비행기
제8장 네로네로 섬
NINE 벼랑
제10장 H.G.웰스
ELEVEN 그렘린
제12장 장수풍뎅이
THIRTEEN 적(敵)
제14장 폐허 거리
FIFTEEN 비욘드
제16장 비욘드II
<죠지 죠스타>는 하드커버판(σ) 768페이지, 신서판(σ) 896페이지로, 마이조 오타로의 가장 긴 장편 소설인 <디스코탐정 수요일>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작품입니다. (<디스코탐정 수요일>과 100편의 괴담집 <深夜百太郎>는 나눠져 나왔으므로, 그의 저서 중 가장 두꺼운 책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평판이 좋은 오츠이치의 <더 북>과 카도노 코헤이의 <수치심 없는 퍼플헤이즈>와 달리, 스스로의 작품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등 죠죠 원작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 대담한 작풍으로 인해 순수한 '소설화'를 기대한 독자 중 적잖은 수가 난색을 표했고, 발매 당시 평판은 극단적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원작 내용의 회상이 주이고 오리지널 요소가 빈약했던 니시오 이신의 <오버 헤븐>의 경우 새로운 판형이나 e북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춰봤을 때, (<더 북>과 <수치심 없는 퍼플헤이즈>는 신서와 문고로, <죠지 죠스타>는 신서로 다시 나왔으며, 세 작품 모두 디지털판이 있음)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은 원작 재현과 재해석뿐이 아닌 소설만의 '이야기'이고, 마이조 오타로의 이야기 또한 지지를 얻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죠죠와 전혀 무관한 다른 소설가(세이료인 류스이)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에서 탄생한 캐릭터인 마이조 오타로 버전의 '쓰쿠모주쿠'를 죠죠의 세계에 등장시킨 것은 이 작가의 팬이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일 같지만, '마이조 오타로'라는 소설가가 온 힘을 다해 '죠죠'와 맞서려면, 그의 소설 세계의 큰 축인 추리 장르의 힘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쓰쿠모주쿠는 죠죠의 테마 중 하나인 '계승'에 대항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걸맞는 캐릭터였을 것입니다.
마이조 오타로라는 소설가는 온 힘으로 <마이조 오타로 VS JOJO> 소설을 집필한 것입니다. 각자의 작가성을 발휘해 죠죠 소설을 쓴다는 의미에서는 모두 VS JOJO이나, 유일하게 죠죠라는 작품 전체에 정면으로 '맞선' 그의 소설에는, VS JOJO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놀라움이 가득합니다.
<죠지 죠스타>는 첫 번째 챕터의 화자인 죠지 죠스타 2세(1부 죠죠 죠나단 죠스타의 아들이며, 2부 죠죠 죠셉 죠스타의 아버지)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활약하는 소설이나, 그 스토리는 당시 완결된 참이었던 7부 스틸 볼 런까지의 요소를 내포합니다. 1~7부 전체를 아우르는 모험 끝에 펼쳐지는 풍경이 무엇일지, 7부까지 정식 한국어판이 간행된 지금, 한국 독자들도 확인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이조 & 죠죠, 양쪽 다 팬인 "선택받은" 분도 계실지도?)
끝으로 슈에이샤 공식 작품 설명문을 옮겨 적습니다. 과연 <궁극>의 싸움이란…!? 직접 책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마이조 오타로가 압도적인 문체와
초 도도도도 급 스케일로 그려낸다!!
"마이죠죠(舞ジョジョ)" 지금 이곳에 탄생!!
(하드커버판 띠지 문구에서 발췌)
죠나단 사후, 카나리아 제도에서 어머니 에리나와 함께 사는 소년 죠지 죠스타는,
리사리사와 사랑을 약속하고, 성장한 후 파일럿이 되어, 세계대전의 하늘을 누빈다!
한편 일본에서는, 후쿠이현 니시아카쓰키초의 소년탐정 죠지 죠스타가 모리오초로 향한다!
두 죠지 죠스타의 <운명>이란…!? 작가 마이조 오타로가 혼신의 JOJO사랑을 담은
초 도도도 급 소설 <마이죠죠>가 궁극신장판 & 전자서적판이 되어 강림!
신서판 사이즈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896페이지에 이르는 <궁극>의 전투…
그 목격자가 되어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것이야말로 <기묘한 모험>!!
(신서판 & 전자서적판 버전 작품 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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